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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된 대통령들·불화 속 성모마리아…한여름 ‘미술’로 물든 부산 [요즘 전시]
부산비엔날레 현장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구헌주 작가의 ‘무궁화 해적단’ 연작. 이정아 기자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구헌주 작가의 ‘무궁화 해적단’ 연작.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부산)=이정아 기자] #. 부산근현대역사관 지하 금고미술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국민 투표로 선출된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이 벽에 내걸렸다. 그런데 무궁화 마크가 새겨진 해적 모자를 쓴 그들의 코가 술에 취한 것처럼 벌겋게 달아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독재’와 ‘자유’ 등 양면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도발적인 이 작품은 구헌주 작가의 ‘무궁화 해적단’ 연작. 그는 “해적은 공동체 안에서 관용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이뤘다”며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했다”고 전했다.

#. 같은 시각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장.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송천 스님이 그린 높이 8m의 초대형 회화에는 천주교의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분명 형식은 불교의 관음상을 떠올리게 하는 불화인데, 그 형상은 은총 가득한 마리아가 자비롭게 미소 짓는 모습이다. 송천 스님은 “이탈리아 베니스의 무라노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에 도나드 성당에 있는 기도하는 마리아 그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부산현대미술관.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송천 스님의 작품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이정아 기자

흥미로우면서도 도전적인 작품들이 늦여름 부산을 물들였다. ‘2024 부산비엔날레’가 65일간 대장정에 들어가면서다. 지난 17일 개막한 부산비엔날레는 사하구 을숙도에 자리 잡은 부산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원도심에 있는 부산 근현대역사관의 금고미술관, 한성1918, 초량재까지 총 4곳에서 36개국 62개팀(78명)의 작가의 34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349점으로 풀어낸 해적과 불교

올해 부산비엔날레를 관통하는 주제는 ‘어둠에서 보기’다. 어둠에서 무언가를 눈으로 본다는 행위 자체부터 역설적이다. 그러나 전시를 기획한 베라 메이와 필립 피로트 공동감독은 어둠에서 세계를 재구상해볼 수 있다고 봤다. 피로트는 “어둠은 종종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그 너머를 낙관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내재적 불완전성이 가진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동감독 체제는 올해가 처음이다.

한성 1918.

부산비엔날레는 주제를 펼치기 위한 두 축으로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을 설정했다. 정부나 거대 자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순수한 평등주의를 포용한 해적 문화와 사회적 신분을 벗어던지고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일에 중점을 두는 불교의 도량에서 ‘해방’이라는 동질적인 미학을 쫓은 것. 박수지 협력 큐레이터는 “특히 올해는 팔레스타인·이란 같은 중동 지역뿐 아니라 세네갈·자메이카·코트디부아르·토고 등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지역의 작가들도 다수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는 저항의 역사가 담긴 작품들이 한자리에서 공명하는 지점을 찾게 만드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윤석남 작가가 4년에 걸쳐 작업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초상 연작이 전시장 ‘ㄱ’ 자 벽면을 가득 채웠다. 이러한 초상 연작과 마주한 작품은 인도네시아 쌀값 폭등으로 인한 민중 저항을 표현한 인도네시아 작가 그룹 타링 파디의 회화와 쌀 포대들이었다. 어둠 속에 갇혔으나 끝내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개인들의 비장한 표정들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윤석남의 작품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연작. 이정아 기자

가장 어둡게 연출한 2층 전시장에는 끝내 패배한 노동자 대투쟁의 비극적인 한국 역사를 다룬 홍진원 작가의 사진과 영상 등이 차지했고, 가장 밝은 빛을 내뿜고 있는 지하 전시장에는 인도 카스트 제도로 억압받아 온 수백만 달리트(Dalit·카스트에 속하지 않는 불가촉천민계급) 사람들을 기리는 라즈야쉬리 구디의 작품 등이 설치됐다. 이밖에도 위태롭게 부유하는 인간과 그 이면을 특유의 그림체로 표현한 방정아 작가의 작품들과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 작가인 이두원의 작업들이 소개됐다.

국가, 거대 자본, 권력 제도, 사회적 재난 등에서 소외된 이들이 고통을 종결짓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모두 ‘어떠한 성찰’에 닿아있는 작품들이다.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라즈야쉬리 구디의 작품 ‘지나친 겸손으로는 진정한 선을 이룰 수 없다’. 이정아 기자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방정아의 작품 ‘물속 나한들’. 이정아 기자

주제 연결고리 약해…촘촘한 기획 한계도

다만 전시된 각각의 작품들이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두 축 사이를 긴밀하게 잇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개별 작품이 상징하는 이미지와 포용하는 범위가 무척이나 다채롭고 상이하기까지 한데, 이러한 맥락이 전체 주제와 촘촘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저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따로따로 존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전시장 입장권은 일반 1만6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5000원이다. 월요일은 정기 휴관일.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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