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시대…불교와 선명상이 답이 될 것
문제라고 생각 안 하면 문제가 되지 않아
자신에 집중하면 비교로 오는 괴로움 잊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저스트비 홍대선원의 5층 법당에서 주지 준한스님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죽비다. ‘올드’한 느낌을 피하고자 평소 목탁 대신 ‘힙한’ 죽비를 사용한다. 스님 뒤로는 동그란 거울이다. 선불교에서는 거울에 나를 비춰 수행하라고 이른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최근 회자되는 ‘선명상’은 사실 불교의 오랜 수행 방법 중 하나인 참선·명상이다. ‘서양식 명상’과 차별화하기 위해 조계종이 일종의 ‘리브랜딩’을 한 것이다. 조계종이 이런 노력을 하는 이유는 ‘참선’이란 말 자체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 때문이다. 왠지 참선을 하자고 하면 종교적 벽을 느끼고 뒷걸음질 치는 게 일반 대중들의 심리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참선, 즉 선명상이다.
선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할 첫 번째 스님은 바로 준한스님이다. 최근 헤럴드경제는 그가 주지로 있는 서울 마포구 소재 홍대선원에서 만났다. 홍대선원은 지역의 특성상 연령대가 어린 청년들과 외국인 수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여타 다른 절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준한스님은 “원래 명상하면 불교다. 그런데 종단 차원에서 지금이 불교가 여태 쌓아왔던 명상의 노하우를 제대로 풀어낼 때가 됐음을 느껴 선명상 대중화에 나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코로나가 끝나고 달라졌어요. 문이 열리면서 갇혀있던 청년들이 나와보니 세상도 달라졌지만 자기들이 생각하던 인식도 달라진거죠. 반강제로 격리됐다가 나오면서 마음이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친구들이 많아요. 나는 방안에 갇혀있는데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요. 뉴스는 어떤가요. 흉흉한 소식들이 많죠. 그러니 다들 따뜻함, 평화로움을 갈구하지 않았나 싶어요.”
불교는 유일신을 향하는 다른 종교(religion)와 달리,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 특히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준한스님은 “내 안의 평화를 이뤄야 세상의 평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인데, 내 마음이 괴로운 와중에 어떻게 세상의 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겠느냐”며 “이전까지는 시대의 방향이 명예·돈·권력 등 밖을 향해 있었다면, 지금은 안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내 안의 평화, 행복, 충만함이 진짜 중요하다는 것을 시대가 아는 시기가 오면서 불교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준한스님은 명상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자’라는 한 줄로 정리했다. 노는 것도 명상이요, 쉬는 것도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순간에 집중한다는 것은 괜한 번민을 거듭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스트레스, 불안함은 내 마음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면서 병이 되는 거예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해야 문제가 되는거죠. 예컨대 불어를 못하는 사람이 프랑스 사람한테 불어로 욕을 먹는다면, 그래도 그 사람은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나보다’ 생각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은 흔히들 괴로움은 밖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내가 괴로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죠.”
이때 ‘정신 승리와 뭐가 다른가’하는 의문에 대해 스님은 “정신 승리가 필요할 때는 일단 정신 승리를 해야한다”며 “지금은 당장 일단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또 좋고 나쁨의 감정을 단박에 가르고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일단은 보류하고 좀 더 깊이 사안을 알아본 다음에 선·악을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판단을 내린 후에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앞선 결정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
수행을 할 수록 작은 파도에는 잘 휩쓸리지 않는다. 더 큰 파도에는 속절없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전보다 흔들림의 시간이 단축됐다. 임세준 기자 |
한국 사회가 유독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같은 뿌리에서 찾을 수 있다.
“머리를 너무 많이 쓰는 데서 오는 게 피곤함인 것 같아요. 단순히 몸이 피곤하면 자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거든요. 카르마(Karma, 업보), 습관이죠. 머리를 계속 굴리는 게 습관이 되면 몸이 피곤해도 잠에 들지 못하고 더 피곤해져요. 많은 한국인들이 마음을 쉬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어요.”
준한스님은 서로 비교하고 우열을 나누는 문화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청년들에게 “그대들의 탓이 아니다”고 전한다.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는 생존 DNA가 박혀있을 수 밖에 없으며, 아이들 또한 무한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매트릭스 프로그램에서 갇혀 자꾸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남과 비교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남에게 신경을 끄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며 선불교(조계종 계열)에서 말하는 수행, 지금은 선명상이 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내 마음의 빛을 돌려서 나를 봐야 해요. 불상도 아니고,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춰 바라봐야 합니다.”
준한스님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선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실제로 준한스님의 손길이 하나하나 닿은 홍대선원에서는 큰 불상을 찾기 어려웠다. 5층 법당에도 원래는 거울만 두려고 했지만 구색상 불상이 하나 있어야 한다는 말에 작은 크기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하나 앉혔을 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비단 청년 뿐만 아니라 인생의 절반을 지난 중장년층도 여전히 갖고 있는 마음이에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고들 말하죠. 그런데 내가 스스로를 못 믿는데 누가 날 믿어주겠어요. 내 안에 무한한 내면의 힘과 지혜가 있다는 것은 부처님부터 시작해서 모든 성인이 말했던 거예요. 거울을 보고 내 단점마저 스스로 안아 줄 수 있어야 해요.”
오는 10월이면 개관 2주년을 맞는 저스트비 홍대선원은 앞으로도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모여 재미있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려나가도록 방향을 잡아주겠다고 말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사람을 좋아하고,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았어요. 그리고 저는 아주 옛날부터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죠. 미국 유학 시절에도 볼링 클럽을 만들 정도로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걸 워낙 잘해요.(웃음)”
저스트비 홍대선원 1층은 완전한 열린 공간이다. 누구든 와서 차 한잔 할 수 있다. 보시 받은 걸로 무상으로 내준다. 2층부터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템플스테이처럼 머물 수 있고, 5층은 법당이다. 법당에선 명상 프로그램 등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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