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내 한 카페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다회용 컵 안에 넣어 제공했다. 주소현 기자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왜 컵을 두 개나 써?”
다름 아닌 국회 안 카페. 여기서 음료를 주문한 직장인 조모(29) 씨는 음료를 받곤 황당했다. 다회용컵도, 일회용컵도 둘다 줬기 때문.
음료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있고, 여기에 다회용 스테인리스 컵이 덧씌워 있었다. 조씨는 “스타벅스에서도 매장에선 다회용컵만 쓰는데, 왜 둘다 주는 건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국회 내 한 카페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다회용 컵 안에 넣어 제공했다. 주소현 기자 |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 사용은 금지돼 있다. 다회용 컵만 써야 한다. 업주들은 다회용컵 사용이 당연 불편하다. 하지만 플라스틱 절감 차원에서 입법화된 제도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이 같은 규제를 만든 국회 내 카페에서 버젓이 이를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나, 그냥 대놓고 일회용컵을 쓰는 게 아니라 외관 상으론 다회용컵으로 가리는 ‘꼼수’란 점에서 더 문제다.
그리고 이는 명확한 불법이다. 카페를 비롯한 식객업소 매장 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쓰는 건 자원의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에 따라 금지돼 있다. 위반 시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회 내 한 카페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다회용 컵 안에 넣어 제공했다. 주소현 기자 |
언뜻 보면 매장 내에서 다회용 컵을 쓰는 것처럼 눈속임 하다 보니, 카페 이용객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남은 음료를 가져갈 수 있도록 포장해 달라는 요청에 씌워둔 다회용 컵을 벗겨주자 당황하는 이용객도 있었다.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에 대해 카페 측은 “발달장애인이 일하다 보니 음료를 쏟기 쉬워 뚜껑이 필요하다”며 “불가피하게 일회용 컵을 매장 내에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뿐 아니라 전국 공공기관 내 일회용품 사용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환경운동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23개 지방자치단체 청사에 반입되는 음료 중 82.6%에 일회용 컵이 사용됐다. 지난달 마지막주 낮 12시부터 1시까지 공공청사에 들어오는 약 1만6000명을 관찰한 결과다. 이틀 이상 관찰한 경우 평균값을 냈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은 17.4%의 경우 다회용 개인컵을 들고 있거나, 지역 내 다회용컵 대여 서비스를 이용했다. 부산의 ‘부산E컵’이나 창원의 ‘돌돌이컵’ 등이다.
성남시청사 내에서 일회용 컵을 들고가는 모습 [환경운동연합 제공] |
지역 별로 보면 대구광역시청과 대전광역시청, 안산시청과 안동시청의 일회용 컵 사용률은 100%에 달했다. 청사 내로 음료를 들고오는 경우 백이면 백, 일회용 컵을 사용했다는 의미다.
이어 인천남동구청 99.2%, 목포시청과 의정부시청 98.2%, 오산시청과 전남도청도 98.1%로 일회용 컵 사용률이 집계됐다. 서울시청은 93.9%로 나타났다.
눈 여겨볼 곳은 환경부다. 일회용 컵 사용을 규제하는 환경부가 위치한 세종시의 정부공공청사에서 일회용 컵 사용률은 96.9%로 전국 평균(82.6%)를 훌쩍 웃돌았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
음료 포장 시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건 현행 법상 가능하지만, 공공 청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회용품 소비 문화를 개선하고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에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할 책임이 있어서다.
2022년 말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일회용품 등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청사와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회의 및 행사 등에서 일회용품을 사용 및 구매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는 페트병에 넣은 먹는물, 우산 비닐 등이 포함된다.
또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자는 다회용 컵과 음수대, 우산 빗물 제거기 등 일회용품이 아닌 제품을 사용 노력도 규정돼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공공기관은 일회용품을 구매·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구실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환경부는 ‘노력’이 아닌 실효성 있는 ‘규제’를 통해 일회용 감축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addressh@heraldcorp.com